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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주]스페이스X 꿈꾸는 韓 ‘괴짜들’…페리지에어로 상장 추진의 의미카테고리 없음 2022. 9. 12. 15:22
시장성이 열린 우주산업의 국내외 소식을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
#우주로 향했던 발사체를 회수해 다시 사용하고, 막대한 돈과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대기권을 벗어나는 ‘색다른’ 여행도 가능하다.
#“우리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안착시켜주시죠”, “발사일은 이때가 괜찮으실까요?”…국가 단위에서나 진행되던 인공위성 발사가 기업 간 거래를 통해 빈번하게 이뤄진다.
먼 얘기가 아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주산업 시장의 단면이다. 국가 단위 사업을 통해서만 이뤄졌던 우주탐사 분야의 무게 중심이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이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변화의 중심에 선 기업은 단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스페이스X가 꼽힌다. 2002년 설립된 스페이스X는 그간 △재사용 발사체 상용화 △민간 우주여행 △인공위성 기반 지구 전역 대상 초고속 인터넷 구축 추진(스타링크) 등 다양한 성과를 올렸다. 스페이스X의 현재 기업 가치는 1250억달러(약 165조원)로 추산된다. 재사용 발사체 확보 등 국가 단위 사업에서도 달성하지 못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기술력이 기업 가치 평가에 반영됐다.국내 첫 우주전문 상장사 탄생할까우리나라에도 스페이스X와 같은 대형 우주탐사 기업을 꿈꾸는 곳이 있다. 방산 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우주산업 시장에서 순수하게 우주발사체 개발만을 추구하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이하 페리지)에 대한 얘기다.
페리지는 현재 기술특례 상장을 통한 코스닥 입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대표 주관사로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공동 선정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진행 중이다. 상장 목표 시점은 2023년으로 잡고 있다.
페리지가 상장에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도 ‘우주발사체’를 전문으로 사업을 꾸려가는 기업이 처음으로 생기게 된다. 물론 지금도 상장사 중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이 우주발사체 관련 기업으로 꼽힌다. 다만 이들 기업의 매출은 대부분 방산 영역에서 나온다. 우주산업보단 방산 관련 이슈에 주가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동윤 페리지 대표는 201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학부생들을 중심으로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신 대표 역시 카이스트 항공우주학과에서 공부했다. 그는 ‘로켓이 너무 좋다’는 어쩌면 일반인 시선에선 ‘괴짜’로 보일 수 있는 이들을 모아 회사를 만들었다.이들은 창업 후 4년간 재사용 우주발사체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호버링’에 대한 노하우를 독자적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기체가 일정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구현하는 데 쓰인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미 약 270억원의 투자금도 확보했다.
페리지는 국내 유일의 액체연료 기반 우주로켓 스타트업을 표방한다. 이 같은 자신감은 호버링 외에도 다양한 기술 개발 성과를 올린 점을 근거로 한다. 회사는 카이스트와 함께 올해 초 자체적으로 개발한 발사체의 시험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페리지가 노리는 시장은 소형 인공위성 분야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우주발사체를 통해 50kg 안팎의 위성을 지구 저궤도(LEO)로 수송하는 서비스로 매출을 일으키겠단 청사진을 그렸다.
페리지는 이를 위해 현재 소형 2단 발사체 ‘블루웨일 1(BW1)’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발사체 상단부(BW 0.4) 개발을 완료하고, 2023년에는 발사체 하단부(BW 0.6)를 제작할 계획이다. 해당 발사체를 통한 상업 서비스는 2024년 개시를 목표로 한다. 페리지 측은 BW1이 25억원 미만의 비용으로 50kg 안팎의 소형 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릴 수 있는 성능을 지녀 충분한 경제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BW1에 사용되는 액체메탄 연료 시스템은 스페이스X에서 개발 중인 달과 화성 탐사용 다목적 초대형 우주발사체 스타십(Starship)에도 사용되는 시스템이다. 고체연료 대비 높은 기술력과 복잡한 구조를 필요로 하지만 고효율과 섬세한 추력 조절(방향 전환)은 물론 높은 비추력 등의 특징을 가진다.
페리지는 BW1 개발 계획을 보다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코스닥 상장을 선택했다. 2022년 10월 시리즈 C를 진행해 개발 비용을 충당하고, 2023년 상장 후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인력을 충원해 현재 직원 50명인 회사를 3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페리지는 BW1 개발과 함께 제주도에 발사장(Launch Pad)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로켓 개발부터 발사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최종 목표다.우주산업 정착기 들어선 韓페리지의 상장 추진은 국내 우주산업 발전과도 무관치 않다. 우주탐사 분야의 핵심으로 꼽히는 발사체 기술은 냉전기 때 체제 경쟁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성장해왔다. 냉전기가 종식된 현재에도 우주발사체 분야는 거듭해서 발전 중이다. 국가 발전의 척도를 가늠하는 걸 목적으로 하기보단 시장 논리에 의해서다. 세계는 지금 국가 주도의 우주개발 시대를 의미하는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우주개발 시대를 의미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에 진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주산업 발전 단계를 크게 △태동기 △정착기 △성숙기 등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우주탐사 분야에 뒤늦게 뛰어든 우리나라는 최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고, 우리나라 첫 달 탐사 궤도선 ‘다누리’도 현재 심우주 항해를 문제없이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누리호와 다누리는 정부 개발 사업을 통해 달성된 성과다. 이 때문에 뉴 스페이스 시대에는 아직 진입하지 못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우리나라 우주산업은 태동기를 벗어나 이제 정착기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스페이스X 등 세계적 우주탐사 기업이 성장한 방법처럼 국가 주도로 개발한 기술을 민간에 이전, 산업 생태계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페이스X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핵심 기술을 이전 받아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우리 정부 역시 민간이 우주 기술을 이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페리지는 이 중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소형발사체 개발역량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027년까지 총 6년간 진행되는 해당 사업엔 총 278억50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정부가 구상하는 소형발사체는 2단 형태다. 1단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에 탑재된 75t 엔진을 사용하면 되지만, 2단은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경쟁형 연구개발을 통해 ‘소형발사체의 상단용 엔진’을 개발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500kg급 차세대중형위성을 지구 저궤도(500km)로 발사 가능한 운송 수단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소형발사체는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누리호와 기대 성능이 다르다. 누리호보다 적은 비용으로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형위성을 군집으로 운영하는 식의 위성 통신 사업이 해당 소형발사체를 통해 국내에서도 진행할 수 있다.
지난 6월 페리지와 함께 대한항공·이노스페이스가 대상 기업으로 선정돼 소형발사체 2단 엔진을 개발 중이다. 페리지 관계자는 “소형발사체 개발 사업 외에도 정부가 진행 중인 다양한 사업에 적극 참여해 우주탐사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페리지가 진출 노리고 있는 소형 인공위성 시장은 성장성이 담보된 분야로 꼽힌다. 영상 분석이나 통신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는 세계 위성 영상 시장이 2020년 26억달러(약 3조4000억원)에서 2030년 73억달러(약 9조4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밸류에이츠는 세계 초소형 인공위성 시장이 2020년 32억달러(약 4조원)에서 2030년 141억달러(약 18조원)로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신 대표는 “이번 상장 주관사 선정을 통해 KB증권-한국투자증권과 우주로 나아가는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산·학·연·관과 적극 협력하고 소형발사체부터 유인우주선까지 개발하는 종합 우주플랫폼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